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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anin bcn

봄의 전령(傳令) 도사리 이덕대(수필가)



며칠 있으면 입춘이다. 동장군의 위세가 아직 만만찮고 하얗게 눈이 쌓인 만동(晩冬)에도 야산자락의 양지 바른 곳에는 아마도 복수초가 봄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미세먼지와 한파에 찌든 겨울을 지나오면서 너무도 기다리던 봄인데 봄의 색깔조차 잘 떠오르지 않는다. 남보다 일찍 봄을 맞이하고 싶어 찾은 시골 오일장에서 차가운 바람을 견디고 살아남은 반가운 봄의 전령을 만났다. 잿빛 시간들을 버티면서도 푸름을 잃지 않은 도사리를 보니 기껍고 대견했다.


그런데 옛 어른들은 왜 겨울을 이겨 낸 속이 차지 않은 배추를 도사리라 불렀을까. 아마도 겨우내 죽은 듯이 누런 잎만 붙어 있다가 되살아난 것을 보고 도로 살이라고 하던 것이 도사리로 음운 변화가 된 것이지 싶다. 도사리는 벼 못자리에 다시 자라난 작은 풀 또는 이른 봄 작년에 거둔 뿌리에서 다시 살아난 배추라고 두 가지로 설명되어 있다. 또한 사전적 의미로 익지 않고 떨어진 열매를 의미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부르는 봄동 보다는 도사리란 말에 정감이 더 간다. 어쩌면 우리 세대가 어렵고 가난한 세월을 도사리처럼 살아 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비닐을 덮고 살아남은 가을배추는 도사리라고 할 수가 없다. 설한(雪寒)과 빙월(氷月)을 거치면서, 살을 에는 노지에서 살아남아야 진정한 봄의 전령이 된다. 백설이 만건곤한 곳의 푸른 소나무와 같다고나 할까. 봄동이라고 하면 왠지 도사리의 강인한 생명력을 무시하는 것 같다. 가을과 겨울 그리고 봄으로까지 이어지는, 겨울과 봄을 동시에 연결하고 죽음과 삶을 차가운 흰색과 찬란한 연두색으로 품고 있는 도사리의 인내심이 우리들의 모습을 닮아 있다.


겨울의 끝에 다다랐을 때 하우스가 아닌 노지에서 당당하게 살아남은 봄의 전령 맛은 달콤하고 아삭하다. 쌈으로 먹어도, 겉절이로 먹어도 좋다. 더구나 조개를 넣은 된장국 속의 도사리는 봄 향기와 달달함이 어우러져 청량한 느낌마저 준다. 사람에게 밟히고, 염소나 닭에게 뜯기고 쪼이며 살아남은 경이로운 생명의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아무런 양념도 하지 않고 그냥 먹는 것이 가장 좋다. 푸른 잎에 아무것도 보태지 않고 씹었을 때 비로소 입 안 가득 가을의 쓸쓸함, 겨울의 황량함, 봄의 신선함이 느껴진다. 봄의 길목에서 칼로리가 낮고 식이섬유도 풍부한 도사리로 몸속의 미세먼지를 씻어내고 겨울동안 잃었던 미각도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 도사리의 생명력과 함께 온 세상이 따뜻해질 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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