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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그 시절 열무김치 추억



가을이 오면 산골 낮은 길고 밤은 짧다. 추수기 시골 밥상은 곤궁하고 찬들은 소박하다. 기껏해야 오이나 가지 냉국에 텃밭 그늘에서 벌레에 뜯겨가며 어렵게 자란 열무김치 한 종발 오르는 게 전부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어머니는 논일 들일로 바빠 읍내 자취생의 밥상은 스스로 만든 볶음 멸치 몇 마리와 싸구려 기름에 튀겨진 어묵 조림이 전부였으며 그래도 틈을 내어 일주일에 한번 집에서 정성으로 만들어주시던 열무김치가 구색을 갖추곤 했다. 냉장고도 없던 시절에 군내 나는 김치였지만…


그날따라 진주행 마지막 버스는 자취생들의 짐들로 가득 찼다. 자신의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곤란함과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상황에서도 까닭 없이 찾아오는 불행은 회피가 어려울 때가 있다. 시골버스는 윗마을에서 이미 만원이었고 우리 마을을 지날 때는 우악스런 차장이 고함과 삿대질을 해가면서 밀어 넣어도 더 이상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몸은 버스에 우겨 넣어지고 왼 어깨는 가방을, 오른손엔 새끼줄로 얼기설기 엮은 김치단지가 위태롭게 통로로 이동되었다. 다음 마을에서 또 몇 사람이 탄 후 짐짝 버스는 좁고 가파른 신작로 모퉁이를 지나는데 바퀴에 커다란 돌이라도 부딪혔는지 크게 덜컹거리더니 학생들의 비명소리로 아수라장이다. 손에 든 김치단지 새끼줄이 끊어지는 느낌이 드는 순간 바로 앞에 앉아가던 여학생이 황급히 소리쳤다. “그 김치단지 이리 주라” 순식간에 김치단지는 빼앗기듯 그 여학생 치마 자락 위로 옮겨졌고 한숨으로 안도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만원 버스 뒷자리는 비포장 자갈길에서 크게 한 번 더 튀어 오르며 요동쳤고 미처 손쓸 사이도 없이 안고 있던 열무김치 단지는 공중제비를 넘더니 하얀 상의부터 치마까지 김치 국물을 쏟아 부었다.


정신은 아득했고 혼과 얼이 빠져서 어떻게 읍내 버스 정류장에 내렸는지 몰랐다. 이후 몇 달 동안 열무김치를 보지도 먹지도 못했음은 물론이고 버스조차 타겠다는 염치(廉恥)가 없어 한동안 삼 십리 흙길을 걸어 다녔다.


오래토록 김치단지는 꿈속 악몽이었고 김치단지 귀신에 붙들린 영혼은 하얀 학생복만 보아도 오싹했다. 여기저기 수소문했지만 여태까지 김치단지를 뒤집어 쓴 그 선배님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 해 열무김치는 쓰고 맵고 아렸다. 지금이야 간편한 플라스틱 제품이 넘치고 마트에서는 온갖 반찬을 판다. 열무김치 한 항아리로 일주일을 때우며 어렵게 보내던 그 시절은 지금도 아련히 떠오르는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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