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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엿장수 이덕대(수필가)



멀리서 들려오는 찰그랑찰그랑 엿장수 가위질 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순식간에 입에는 한가득 침이 고이고 눈은 허공을 쳐다보다가 엿과 바꾸어 먹을 수 있는 낡은 흰 고무신이나 찌그러진 주전자 뚜껑, 냄비라도 찾는지 몹시 분주하게 움직인다. 엿장수는 사나흘에 한 번씩 마을을 찾아온다.

사흘 전에는 쌓여있던 커다란 장작 두개와 엿 두 토막을 이미 바꿔먹었다. 파랗고 붉은 과자 부스러기가 먹음직스럽게 그림처럼 뿌려진 엿판은 보기만 해도 황홀했다.

이른 봄 배고픈 때쯤이면 유난히 자주 찾아들던 그 시절 엿장수 아저씨들은 비록 남루한 옷차림에 왜소한 체격으로 볼품없는 쇠태 안경을 쓰고 다녔지만, 아이들의 혼을 빼 갈만큼 맛있는 엿을 팔면서, 고물이나 각종 짐승 털 등을 받아 자원 재활용에 앞장섰다. 가엾고 불쌍한 표정으로 공터공터 골목골목을 따라다니는 아이들의 얼굴에 특별한 시선 두지 않고 열심히 엿만 팔았다. 보리밥 한 그릇도 마음껏 먹기 어려웠던 시절, 엿장수의 엿단쇠 소리는 가장 반가운 소리 중 하나였다. 엿장수 아저씨는 삼베나 떨어진 옷은 물론 개털, 토끼털까지 안 받는 것이 없었다. 그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이 쌀이었고, 보리쌀도 마다하지 않았다. 여자들의 삼단 머리채를 잘라서 팔던 다리 한 채는 거의 엿 한판의 가치가 있었다.

원래 옛날에는 엿판을 지게에 얹어 지고 다녔지만 60년대부터 손수레를 끄는 것으로 바뀌었다. 엿장수가 마을을 찾는 날은 딱히 정해져 있지 않았다. 말 그대로 엿장수 마음대로였다. 돌아다니는 동네가 한정되어 있고, 시골에서 나올 시기와 물건을 뻔히 알고 있는 엿장수는 이런저런 고물이 적당히 모였다 싶을 때쯤이면 어김없이 가위 소리를 내면서 마을을 찾아 들었다. 엿장수가 오는 날 없어지는 멀쩡한 흰 고무신은 달콤한 엿 맛의 유혹에 이끌린 아이들이 엿장수에게 몰래 훔쳐다주고 엿을 바꿔먹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 틀림없었다. 고무신을 엿 바꿔 먹은 아이는 심하게 혼이 나지만 그때 뿐, 몇 달이 지난 후 다시 찾아온 엿장수의 달콤한 유혹을 이기지 못해 또다시 무언가를 가져다주고 엿을 사먹곤 했다. 요즘에야 ‘야 엿 먹어라’ 하면 엄청 심한 욕이지만 그 때 그 시절의 엿 먹어는 달콤하고 황홀한 축복의 말씀이었다. 울던 아이 웃게 하고 웃던 아이 울리던 엿장수, 가난이 물러가고 시대가 바뀌니 이제는 엿장수도 축제장에나 가야 겨우 볼 수 있다. 따뜻한 추녀 밑에서 심심함을 참아가며 엿장수를 기다리던 시간들이 그리운 이른 봄이다.

링크: http://m.g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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